
방콕을 교실로, 세계를 무대로... 함께 키우는 우리 아이들
태국 지역사회 연계 교육 확대와 독도관 기반의 역사 교육 강화 : 교민사회의 사랑으로 성장하는 방콕한국국제학교의 새로운 도약
[방콕=김종민 편집국장] 방콕은 글로벌 교육의 각축장이다. 수백억 원의 자본이 투입된 거대 국제학교들이 앞다투어 화려한 캠퍼스와 압도적인 규모를 과시하는 이 도시에서, 방콕한국국제학교(이하 한국학교)가 서 있는 위치는 독특하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의 교육과정 전 과정에 걸쳐 재학생 180여 명. 수치만 보면 작다. 그러나 2025년 3월 부임해 1주년을 맞은 박상임 교장의 시선은 ‘학교의 외형’이 아닌 ‘교육의 해상도’를 향해 있다.
초불확실성의 시대, 한국학교가 제시하는 향후 3년의 청사진은 명확하다. 규모의 확장에 매몰되기보다, 학생 한 명 한 명의 고유한 결을 읽어내는 ‘초개인화된 정교함’으로 승부하겠다는 것이다. 본지는 박상임 교장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방콕 교민사회의 구심점인 한국학교가 그려가는 미래 교육의 궤적을 추적했다.



Ⅰ. 규모의 경제를 넘어 ‘관계의 밀도’로
교육 현장에서 학교의 규모는 흔히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맹목적인 규모의 확장은 필연적으로 학생 개개인에 대한 집중도 하락을 불러온다. 박 교장은 현재 한국학교의 180명이라는 소규모 체제를 약점이 아닌, 미래 교육을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로 재정의했다.
“미래 교육의 핵심은 현재 제공하는 교육의 질적 향상에 있습니다. 학교의 경쟁력은 학생 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이 맺는 관계의 깊이에서 비롯됩니다.”
박 교장의 이 같은 철학은 학교 현장에서 실질적인 지표로 증명되고 있다. 한국학교의 교사들은 단순히 교과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학습 성향, 교우 관계, 진로에 대한 고민 등 학생의 삶 전반을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학년과 학급의 경계를 허문 공동체적 연대감은, 이역만리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자신이 존중받는 구성원이라는 심리적 안전망(Safety Net)을 제공한다. 이는 수천 명 규모의 대형 국제학교가 구조적으로 모방하기 힘든 ‘관계의 밀도’다.



Ⅱ. 정체성이라는 ‘닻(Anchor)’과 글로벌 역량이라는 ‘돛(Sail)’
재외국민 교육의 가장 큰 딜레마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글로벌 인재 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에 있다. 종종 이 두 가치는 상충하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박 교장의 통찰은 달랐다. “자신의 뿌리에 대한 이해가 깊을수록 타 문화에 대한 포용력도 커진다”는 것이다.
최근 학교 내에 조성된 ‘독도관’은 이러한 철학의 상징적 공간이다. 경상북도와 연계한 ‘독도 수호 중점학교’ 지정은 단순한 민족주의적 전시 행정이 아니다. 학생들은 이곳에서 역사적 배경과 국제법적 논리를 탐구하고, 토론과 영문 영상 제작 등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한다. 확고한 정체성이라는 ‘닻’을 내린 아이들만이 세계 무대에서 흔들림 없이 소통할 수 있다는 확신이 깔려 있다.
동시에 글로벌 소통의 도구인 영어 교육은 철저히 ‘실전형’으로 재편되었다. 투입(Input) 중심의 전통적 방식에서 벗어나, English Oratory Challenge, 영어 에세이 및 프레젠테이션 등 산출(Output) 중심의 교육과정을 전면 배치했다. 중·고등부의 체계적인 어휘인증제는 학문적 영어 역량을 담보하며, 이는 곧 한국 대학 특례전형의 지속적인 성과뿐만 아니라 태국, 미국, 영국, 싱가포르 등 다국적 진학 루트를 개척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Ⅲ. 방콕을 거대한 하이브리드 교실로
한국학교의 청사진에서 두드러지는 또 다른 특징은 교문 밖으로의 확장성이다. 방콕은 다국적 자본과 다문화가 교차하는 동남아시아의 허브다. 학교는 이 지정학적 이점을 십분 활용해 방콕 자체를 거대한 교육 인프라로 삼고 있다.
아이콘시암(ICONSIAM) 진로체험학습을 통한 현대 상업 문화 예술 공간의 실물 경제 탐구, 쭐라롱껀 대학교 및 방켄 도서관과의 지속적인 교류 프로그램은 그 단적인 예다. 박 교장은 “지역사회와의 연계는 단순한 체험을 넘어 학생들이 사회 속에서 실천적 지식을 쌓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향후 태국 현지 기관과의 산학 연계 및 문화 교류를 더욱 확대해, 학생들이 주재국의 문화를 체화하고 국제적 감각을 날카롭게 벼릴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Ⅳ. 제3문화 아이들(TCK)을 위한 정교한 랩어라운드(Wrap-around) 지원
해외 거주 학생들은 잦은 환경 변화로 인해 필연적으로 학업 스트레스 못지않은 정서적 불안과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박 교장과 한국학교는 이 지점을 정확히 직시하고 있다.
전 편입생, 한국 직행 학생, 제3국 이동 학생 등 다변화된 학생 군을 위해 학교는 촘촘한 그물망을 쳤다. 입학 초기 학교장 직접 면담을 포함한 적응 지원 체계를 가동하고, 언어 장벽을 겪는 학생을 위한 KSL(한국어 지원)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운영해 교과 문해력을 끌어올린다. 또한 심리 정서 검사를 정례화하고 전문 상담 기관 연계, 또래 코칭 등을 통해 학업, 생활, 정서를 아우르는 다면적 보호 체계를 구축했다. ‘행사’로 그치기 쉬운 별솔제나 주제통합수업 역시 학생들의 성장을 추적하고 피드백을 제공하는 교육적 자산으로 활용하고 있다.



Ⅴ. 교민사회의 자산, 새로운 비상을 준비하다
학교 이전과 교육 환경 확충이라는 중장기적 과제를 안고 있는 방콕한국국제학교. 그러나 이 무거운 과제 앞에서도 박 교장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그 배경에는 태국 교민사회의 끈끈한 연대가 자리하고 있다.
“‘후원의 집’을 비롯해 학교를 향한 방콕 교민사회의 조건 없는 사랑과 지원이 지금의 한국학교를 지탱하는 힘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방콕한국국제학교는 단순히 한국의 교육과정을 해외로 이식한 공간이 아니다. 오랜 세월 방콕에 뿌리내린 교민들의 땀과 염원이 빚어낸 공동의 자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