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욕망(欲望)이라는 말

2025/08/18 10:09:49

욕망(欲望)이라는 말 왜 사는가? 여기에 대한 대답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일 거다. 하고 싶은 일이 없다면 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제 여한이 없다는 말이나 더 살아서 뭐하겠는가 하는 말은 욕망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인간에게 욕망은 삶의 이유이기도 하면서 삶의 걸림돌이기도 하다. 특히 인간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는 식욕과 수면욕과 성욕은 삶을 다양한 방향으로 이끈다. 욕망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모두 갖고 있다. 그러나 욕구를 따라 행동하면 때로 동물 취급을 받기도 하고, 동물만도 못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욕망은 추구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절제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욕망은 나의 가치가 되기도 한다. 종교에서는 욕망을 이겨내고, 벗어나는 것을 인생의 가치로 삼기도 한다. 하지만 욕망이 없다면 인간은 살 수조차 없을 것이다. 인간은 어릴 때는 자고 싶으면 자고 깨고 싶으면 깨니 괴로운 건 식욕뿐이다. 배고플 때 엄마가 젖을 주어야 하는데 엄마가 안 보이면 하늘이 무너진 듯 울어 재끼고 소리 지른다. 아기 때는 식욕이 제일 중요하다. 물론 자고 싶은데 잠이 안 와서 잠투정을 부리기도 한다. 이때 배고픈 줄 잘못 알고 젖을 주면 난리가 난다. 자라면서도 식욕은 늘 왕성하나 아이가 먹는 것보다 노는 게 재미있을 때는 부모의 속이 탄다. 조금이라도 더 먹이려고 안달 나는데, 아이는 안 먹겠다고 도망을 다닌다. 어른들이 아이는 굶기면 저절로 먹는다고 하는데, 이 말이 정답인 줄을 알지만 굶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한참 놀고 나면 밥을 찾으니 노는 게 밥보다 먼저일 뿐 밥을 멀리한 것은 아니다. 사춘기는 욕망이 분출하는 시기이다 식욕도 수면욕도 왕성하나 마음껏 잠자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배워야 할 일이 많고, 해야 할 일도 적지 않다. 그래서 자도 자도 부족하고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시기가 바로 사춘기다. 물론 낯선 성욕에 어쩔 줄 모르는 시기이기도 하다. 욕망을 제어할 수도 없고, 욕망을 실현할 수도 없다. 욕망의 균형이 맞지 않은 괴로움과 궁금함의 시간이 바로 이 시기인데, 그래서 힘이 든다.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가까운 사람과 부딪치는 게 일이다. 특히 부모님과의 마찰이 심각하다. 청년이 되면 성욕이 가장 중요한 욕망인 것 같다. 좋은 이를 만나기 위해 공부하고 돈을 벌고 몸을 만들고 나를 꾸민다. 먹는 것도 줄이고 자는 것도 줄이니 삶의 재미가 참을성에서 온다. 좋은 짝을 만나는 게 모든 것의 목표는 아니겠으나 주요 원인임에 틀림없다. 어쩌면 일찍 짝을 만나는 것이 안정을 줄 것이다. 짝을 찾는 시간은 재미있지만 힘든 시간이다. 갱년기는 몸에서 욕망이 떨어져 나가는 시기라고나 할까. 성욕이 귀찮고, 수면욕은 충족되지 않아 불면의 밤을 이루며, 작은 식욕만으로도 배의 둘레는 한없이 불어난다. 괴로움의 시간이다. 그렇게 장년을 지나 노년으로 향하는데도 인간의 욕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앉으면 옛날 자랑, 돌아서면 자식 자랑이다. 쓰지도 않을 돈 자랑에, 다 늙은 몸 자랑까지 자랑은 그대로 집착이 되어 나 자신과 주위 사람을 괴롭힌다. 나이를 먹지만 여전히 음식에 집착을 보이고 아직도 이성에 눈과 몸이 향하니 괴로운 일이다. 잠을 못 잔다고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졸음이 쏟아진다. 그렇게 졸아대니 밤에 잠이 안 오는 게 당연하다는 말에 달리 변명할 말도 없다. 욕망이 욕구가 되고, 욕심이 된다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의 마지막이 왜 욕인지 알겠다. 욕이 사라지면 깨닫거나 죽는 거다. 내 욕망을 바라본다.

[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오늘의 어휘

2025/08/13 10:15:40

오늘의 어휘 오늘 아침,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나요? 나도 모르게 손전화로 손이 향하고, 온갖 복잡한 소식에 머릿속이 멍해진 채로 일어날 수도 있겠습니다. 시작이 반이라는데, 시작부터 나를 가라앉게 합니다.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좋은 사람을 떠올리고, 좋은 어휘를 떠올리려고 노력합니다. 처음에는 애쓰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자연스레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 좋은 어휘가 일상의 시작입니다. 어휘는 그냥 말이 아닙니다. 어휘는 세상을 잇고 있습니다. 단어와 단어를 잇고, 단어와 생각을 잇고, 단어와 사람을 잇습니다. 그러고는 기어코 사람과 사람을 잇습니다. 우리가 동물과 달리 말을 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이어져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 바로 말입니다. 말이 없다면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며, 서로를 사랑하지 못할 것입니다.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생각을 담을 수 있고, 생각을 전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오랫동안 전해져 오는 말에는 그 에너지가 더욱 큽니다. 조상의 사고를 이해할 수 있으며, 그 속에서 우리가 함께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말은 우리 속 무형의 유전자이며, 문화입니다. 말이 곧 사람이고, 말이 곧 가치인 셈입니다. 말에서 힘을 느껴보기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휘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쓰고, 듣고, 살아갑니다. 표면적인 뜻에만 관심이 있고, 그래서 표면적인 관심에 휘둘리게 됩니다. 드러나 있는 의미를 만나 감정의 폭풍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위험한 어휘의 세상입니다. 어휘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다른 깊은 정신의 세계를 담고 있습니다. 어휘를 공부하고, 생각한다는 것은 내 속을 들여다보는 일입니다. 어휘를 통해서 내 깊은 속을 들여다보면 종종 내 삶이 안쓰러워지기도 할 겁니다. 하루를 바둥거리면 살고 있음에 한숨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좋은 겁니다. 자신을 마주하는 일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한참을 마주하고 나면, 자신이 더 귀하게 느껴질 겁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 사람들을 만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귀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귀하다는 말은 드물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드물지 않으면 귀하지 않습니다. 어휘는 나를 깨우기도 하고 나를 위로하기도 합니다. 토닥여주는 거죠.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그 순간 행복해집니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기쁩니다. 기쁜 마음은 즐거운 마음과 통합니다. 그래서 짜증과 미움을 멀리해야 하고, 귀찮음을 주의해야 합니다. 서로를 고맙게 생각해야 하며,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어야 합니다. 서로 함께하는 삶이 좋아야 합니다. 같이 미리내도 바라보고, 어깨춤도 추면 좋겠습니다. 살면서 좋은 일이 많기 바라고, 슬픈 일이 적기 바랍니다. 어쩔 수 없이 닥친 힘든 일이라면 잘 넘길 수 있기 바랍니다. 세상은 살아가는 곳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곳입니다. 오늘 하루도 어휘를 생각하며 행복하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이렇게 바라는 일이 많고, 궁금증이 많은 삶이면 좋겠습니다. 웃음꽃 피는 하루를 기원합니다. ‘오늘의 날씨’처럼 오늘의 어휘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흥미로운 숫자 세상

2025/07/14 12:52:15

흥미로운 숫자 세상 숫자는 그대로 스토리의 콘텐츠이기도 합니다. 숫자 자체가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밀이기도 합니다. 상징도 되고, 비유도 됩니다. 그야말로 흥미로운 숫자 세상입니다. 우선 38이라는 숫자부터 살펴볼까요? 38이라는 숫자를 보면 무엇이 생각나는가요? 혹시 삼팔선을 생각했다면 역사나 사회 현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삼팔 광 땡’을 생각했다면 화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일 수도 있겠습니다. 뜻밖에 여성의 날을 떠올린 사람이 있다면 놀라운 일입니다. 여성의 날이 3월 8일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에서는 ‘삼팔’이 욕처럼 쓰인다고 하니 중국인 앞에서는 조심해야 할 겁니다. 마치 한국에서 18을 함부로 입에 올리면 안 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사실 삼팔선은 위도 38도와 관련이 있는 숫자입니다. 미국과 소련이 남북한을 분단시킬 때 위도 38도를 기준으로 하였기 때문에 삼팔선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삼팔이라는 숫자가 익숙합니다. 그런데 우리처럼 자신이 사는 나라의 위도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위도를 알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게 정상일 수도 있습니다. 위도를 알고 있는 우리가 오히려 안타까운 것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한편 우리는 숫자로 의사소통을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일이었습니다. 이삿짐센터의 전화번호는 거의 2424였습니다. 중고거래를 하는 곳은 4989가 대부분이었고요. 8282는 일을 빨리한다는 의미였고, 012는 ‘영원히’의 뜻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10102는 ‘열렬히’의 뜻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이 밖에도 많은 숫자가 의사소통에 쓰였습니다. 숫자는 그 자체로 소통의 수단이 된 겁니다. 숫자 중에서 1004는 천사의 의미로 쓰입니다. 전화번호나 차량번호에 선호하는 숫자이기도 합니다. 특히 전화번호로는 최고의 번호라고 할 수 있습니다. 9988은 노인이 좋아하는 숫자입니다. 구십구 세까지 팔팔하게 살자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666은 종교적인 이유로 기분 나쁜 숫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666은 중국에서는 좋은 숫자입니다. 중국사람 전화번호 중에는 666이 포함된 경우가 많습니다. 중국 친구의 번호를 살펴보세요. 아시다시피 7은 서양에서는 매우 선호하는 숫자입니다. 우리도 북두칠성과 관련지어 7을 좋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7을 좋아하지 않는 민족도 많습니다. 중국 남부의 경우도 7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광저우에 갔을 때 엘리베이터에 4층과 7층이 없어서 놀란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4층은 병원 입원실에는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죽음을 상징한다고 보는 겁니다.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선이 위도 38도라고 했는데, 위아래로 가르는 선은 경도 몇 도일까요? 숫자는 의외로 모든 게 관심사는 아닙니다. 관심이 있어야 숫자가 이야기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경도와 관련이 있는 표준시간이 한국과 일본이 왜 같을까요? 북한은 왜 표준시를 30분 바꾸려고 했을까요? 경도가 다르면 시간도 달라져야 정상 아닌가요? 중국은 지역에 따라 시간이 변하지 않는데, 미국은 왜 지역마다 시간이 달라질까요? 궁금증 천지입니다. 오늘 글을 쓴 동기이기도 한 전화의 국가 번호는 어떻게 정한 걸까요? 한국의 국가 번호는 왜 82일까요? 누군가 농담처럼 말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빨리’와는 상관이 없겠지요. 아무튼 사람들에게 가르쳐줄 때는 한국인이 ‘빨리 빨리’를 좋아해서 ‘팔이’라고 농담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래 기억하겠네요. 하지만 일본이 81인 걸로 봐서 답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또 하나 서울은 왜 국번이 02일까요? 왜 01은 없을까요? 03은 없는데 031, 032 등이 있는 이유는 무얼까요?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숫자들이 수수께끼이고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미국의 911과 한국의 119도 궁금한 이야깃거리입니다. 숫자에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세상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말이 정치다

2025/07/02 12:10:03

말이 정치다 정치는 말로 하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정치는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무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뺏고 빼앗기는 일이 아닙니다. 그리스 정치의 시작이 그렇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정치는 문화와 비슷합니다. 문화는 자연상태를 벗어나는 것이고, 동물의 생활과는 다른 것입니다. 한자로 보자면 글이 되는 것, 말로 하는 것입니다. 폭력과 상처는 정치도, 문화도 아닙니다.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현재의 정치는 말로 하는 정치가 아닙니다. 말로 하더라도 윽박지르고 모욕을 주는 정치입니다. 말이라고 해서 다 말이 아닙니다. 우리말에는 여기에 걸맞은 여러 표현이 있습니다. 말이 말 같지 않다든지, 말 같은 소리를 하라든지 하는 말이 여기에 속합니다. 아예 말이 아니라든지, 말이라고 해도 다 같은 말이 아니라는 표현을 합니다. 말은 다 말이 아닙니다. 정치에서는 특히 그렇습니다. 정치의 말은 설득에 방점이 찍힙니다. 당연히 설득을 위한 근거의 마련이 매우 중요합니다. 거짓과 가짜는 정치와 거리가 멉니다. 거짓임이 드러나면 그 정치는 끝입니다. 거짓말하는 정치인은 생각만 해도 공포스럽습니다. 우리는 말을 믿고 그 정치인을 지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엄밀한 근거를 마련했다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가 중요한 가치가 됩니다. 당연히 정치에서는 수사학이 중요합니다. 사실 수사학은 정치뿐 아니라 우리 삶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입니다. 삶을 풍요롭게 하고, 즐겁게 합니다. 서로 칭찬하고, 상처가 되지 않게 나무라는 일도 모두 수사학에서 시작합니다. 수사학을 가르치지 않는 학교가 문제라는 생각도 듭니다. 거짓 꾸밈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더 잘 표현할 수 있게 수사학을 가르쳐야 합니다. 물론 수사학은 배우는 것보다는 많은 활용이 더 필요할 겁니다. 배우더라도 사용해 보지 않으면 나의 수사가 발전하기 어렵습니다. 수사학의 기본에는 인문학이 있습니다. 좋은 글을 많이 읽는 것만큼 수사학에 도움이 되는 게 없을 겁니다. 고전을 읽고, 좋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은 헛된 말이 아닙니다. 설득의 말하기, 글쓰기를 풍요롭게 하려면 좋은 인용이 필요합니다. 좋은 인용은 바로 인문학에서 나옵니다. 물론 치열한 고민과 경험에서도 인용은 나올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다는 것은 달리 말하자면 인간이라면 정치를 해야 한다는 뜻이었을 겁니다. 정치를 하지 않으면 동물의 단계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화가 난다고 폭력으로 의회를 장악하고, 수가 많다고 다수결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붙이고, 모욕을 서슴지 않고, 차별을 드러내고 하는 태도는 정치가 아닙니다. 욕이나 마찬가지인 말을 하거나 아예 욕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정치인이 아닙니다. 정치가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좋은 연설이 사라진 정치가 아쉽습니다. 설득의 연설이 많아지기 바랍니다. 진정한 정치인이 정치를 하는 한국을 꿈꿉니다. 꿈이라고 쓰고 나니 왠지 허망하네요. 정치가 이루어지는 나라이기를 바랍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이상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이상한 생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현실 세계에서 있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일 겁니다. 이해가 됩니다. 저 스스로도 의심하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정치는 분열의 현장에 필요한 것이고, 정치는 다툼과 폭력의 현장에서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정치는 평화의 다른 말이기 때문입니다. 공자께 정치를 물었을 때, 정치는 정(正)이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늘 머릿속에 있습니다. 아니 가슴 속에 있습니다. 거짓으로 술수를 고민하는 정치가 아니라 바른 생각을 바르게 펼칠 수 있는 세상이기 바랍니다. 인간은 정치를 하는 동물입니다. 그래서 동물이 아닙니다.

[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나잇값을 하자

2025/06/18 12:43:10

나잇값을 하자 우리나라 사람은 나이를 먹습니다. 언어표현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제가 요즘 읽고 있는 번역소학을 봐도 나이는 먹는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랜 표현이죠. 대부분의 언어에서 나이를 먹는다고 표현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특이한 일입니다. 나이를 먹는다고 표현하는 것은 나이가 내 몸속에 들어온다는 의미입니다. 당연히 나이에 따라 몸에 변화가 나타납니다. 갑자기 저의 배 둘레를 살펴보게 되네요. 나이를 먹으면 여러 가지 몸과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서 성찰의 시간을 줍니다. 일단 많이 듣는 말대로 어린아이처럼 되기도 합니다. 단순히 말해서 참지 못하는 현상이 생기는 겁니다. 특히 소변은 큰 문제입니다. 나이를 먹으면 소변 생각만 해도 조건 반사로 화장실을 찾게 됩니다. 이때 주변에 화장실이 없으면 그야말로 낭패입니다. 나이를 먹으면 주변 화장실의 위치를 파악하는 버릇을 가져야 합니다. 어릴 때 참지 못하고 옷에 실례를 하던 씁쓸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나이를 먹으면 아이처럼 눈물도 많아집니다. 특히 누가 울면 나도 따라 웁니다. 한 아이가 울면 다른 아이들도 따라 울던 풍경이 생각납니다. 아이들에게 우는 이유를 물어보면 ‘다른 아이가 우니까요.’라는 귀여운 대답을 하더군요. 나이 먹어서도 그렇게 대답한다면 더 이상 귀엽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타인의 슬픔에 내 몸이 공감한다는 건 좋은 일입니다. 남이 울면 나도 울어야 합니다. 남이 슬픈데 나만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슬픈 드라마가 점점 곤욕이네요. 우는 장면이 나오면 자동입니다. 한편 신체 기능의 약화는 세월 탓이려니 하면서도 서글프기도 합니다. 나이가 들면 가까운 게 안 보이고 먼 게 잘 보입니다. 조금 전의 일은 기억이 안 나고 옛일은 또렷합니다. 눈앞의 일에 연연하지 말고 멀리 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빨리 변하는 현실 속의 역할보다는 오랜 지혜를 전하는 사람이어야 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 모습은 정말 그러한가요? 신체는 그렇게 변했는데, 마음은 여전히 눈앞에 일에 집착합니다. 기억이 나지 않아서 점점 실수가 많습니다. 왜 이렇게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지 미안한 사람이 늘어갑니다. 글을 쓰면서 지난번에 기억나지 않았던 이름을 떠올리려고 하니 아직도 망각 속이네요. 답답한 일입니다. 그런데 분명히 안 좋아 보이는 일도 있습니다. 남의 목소리는 잘 안 들리는 반면에 내 목소리는 점점 커집니다. 안 좋은 일이죠. 여기에 대한 해석도 있습니다. 내 말만 하고 남의 말을 안 듣는 겁니다. 나이 들어 가장 경계해야 하는 일은 내가 옳다는 생각과 고집이죠. 집착이 늘어납니다. 사실 이 문제는 좋게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점점 남에 대한 나쁜 이야기를 적게, 작게 들어야 합니다. 순하게 들어야 하는 겁니다. 귀가 순해져야 하는 겁니다. 이러한 것을 논어에서는 이순(耳順)이라고 했습니다. 60세를 의미하는 나이죠. 만약 나이를 먹었는데 목소리가 커지고 고집이 세어진다면 스스로를 돌아봐야 합니다. 나이 먹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많다면 내가 문제인 겁니다. 자꾸 남에 대한 욕이 나온다면 내 집착이 늘었다고 판단하면 됩니다. 나이가 들었을 때 나를 말려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 참으로 옳습니다. 그 사람 말은 꼭 들어야 합니다. 지금 내 모습이 좋다면 죽은 다음의 내 모습도 좋을 겁니다. 달리 말하자면 지금이 천국이어야 죽어서도 천국입니다. 주변 사람과 못 지내고, 자녀와 못 지내고, 화가 많고, 욕심이 늘어난다면 지옥에서 사는 겁니다. 지금 내 모습이 다른 이들이 기억하는 내 모습일 겁니다. 나이 먹을수록 더 선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하고, 받아들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나이를 먹으면 나잇값을 하게 됩니다. 나잇값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올라가는 나의 가치입니다. 나이를 먹었는데 값이 떨어졌다면 나는 잘못 산 겁니다. 우리 모두 나잇값을 하고 살기 바랍니다. 저부터 나잇값을 해야겠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곱고 맑은 제 모습이기 바랍니다.

[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K-콘텐츠와 문화번역’

2025/06/04 16:06:56

한국어, 단순한 언어를 넘어선 문화의 열쇠 조현용 교수의 ‘K-콘텐츠와 문화번역’ 출간 현재 교민잡지에 ‘아름다운 한글’ 을 연재하고 있는 조현용 경희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는 “언어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문화를 이해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조 교수가 최근 펴낸 신간 『K-콘텐츠와 문화번역』(도서출판 하우) 는 한국어 학습자와 교사 모두에게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 단순한 언어 번역 기술을 넘어, 언어와 문화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되짚으며 ‘문화번역’이라는 새로운 교육적 개념을 제시한다. 조 교수는 책에서 “문화번역은 단순히 단어와 문장을 다른 언어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 사이의 오해와 편견을 걷어내고 상호 존중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한국어의 ‘우리’라는 단어는 영어의 ‘we’로 단순 치환할 수 없는 깊은 공동체적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문화적 뉘앙스가 사라질 수 있다. 그는 이런 언어적 맥락을 설명하며, K-팝, 한국 민요, 역사 같은 구체적인 예시들을 통해 독자들이 한국어를 문화적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끈다. 특히 K-콘텐츠가 세계로 뻗어가면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직역 vs 의역 논쟁, 문화적 오해에서 비롯된 번역 실수, 그리고 서구 중심의 번역 관행에 대한 비판도 책에 담겼다. 조 교수는 “반제국주의나 탈식민주의 같은 정치적 담론을 깊이 다루지는 않았지만, 상호문화주의에 공감하며 쓴 책”이라고 밝혔다. 조 교수는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학부를 마치고 같은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한국어학과 및 교육대학원에서 한국어 전공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수요언어문화교육 연구모임을 이끌며 언어와 사고, 어휘, 문화의 관계를 주제로 활발한 강연과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저서로는 『언어로 본 한국인의 문화유전자』 (세종도서 선정), 『한국어 문화교육 강의』 (일본어 번역 출간), 『한국어, 문화를 말하다』 (중국어 번역 출간) 등이 있으며, 이번 신간은 한국어 학습자뿐 아니라 교민 사회와 한류 팬들, 그리고 한국 문화를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귀중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한국어가 단순히 단어와 문법을 배우는 학문이 아닌, 문화를 이해하는 창(窓)이라는 조현용 교수의 메시지는 태국 내 한류 팬들,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 그리고 교민들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언어는 문화다’라는 명제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이번 책은, 우리에게 문화적 감수성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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