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솥뚜껑만 생각해

작성자 : 관리자 날짜 : 2025/11/04 12:09

솥뚜껑만 생각해

이 글의 제목을 보면 무슨 글을 쓰려고 하는지 전혀 감이 안 잡힐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원래 글의 제목을 ‘자라는 생각하지 마!’라고 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책 제목이 생각났습니다. 프레임 전쟁에 관한 책이죠. 저는 이 책을 악용한 수많은 정치가의 모습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환멸이라는 표현이 적당할 수도 있겠습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프레임을 만들기 위해 극좌, 극우도 서슴지 않는 모습이 책을 쓴 저자의 의도는 아니었을 겁니다. 아무튼 어떤 개념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면 그것이 틀이 되어 그 속에 갇히게 됩니다.

레이코프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 원래 제목은 잊으셨기 바랍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저는 이 속담을 보면서 우리의 심리 상태를 잘 표현했다고 느낍니다. 심리학 논문 제목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합니다. 자라에게 손가락을 물려본 사람은 그 고통을 알 겁니다. 저는 물려본 적이 없기에 자라 말고 다른 괴로운 상황을 상상했습니다. 나에게 가장 괴로운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어떤 일이 생각만 해도 두려울까요? 한번 겪은 괴로운 상황은 오랫동안 고통으로 남고, 트라우마가 됩니다.

자라가 얼마나 무서웠으면 자라와 그다지 비슷하지도 않은 솥뚜껑(제가 보기에)을 보고도 놀랐을까요? 아마도 심장이 두근거렸을 겁니다. 개에게 물려 본 사람은 멀리 개만 보여도 몸서리를 칩니다. 사람에게 배신당한 사람은 사람이 무섭습니다. 실수로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준 사람은 실수가 너무나 두렵습니다. 그런 고통을 겪어본 사람은 비슷한 상황만 닥쳐도 식은땀이 나고, 심장이 뜁니다. 공황 상태가 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반복되면, 우울과 불안이 일상화됩니다. 새벽에 깨면 온통 자라 생각뿐입니다. 솥뚜껑을 생각하며, 일을 해결해야 하는데 도리어 자라 생각으로 밤을 샙니다. 혹시 다시 자라에게 물리면 어쩌나 겁이 나고, 왜 나에게만 자라가 나타나는지 원망스럽기까지 합니다. 사실은 실제로 내 앞에 자라가 나타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어쩌면 괜히 자라만 억울할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자라 생각이 날 때마다 솥뚜껑만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노력이라는 표현이 어울립니다. 왜냐하면 저에게도 자꾸 자라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닥쳐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서 해결해야 합니다. 솥뚜껑은 절대로 내 손가락을 물지 않습니다. 저절로 슬금슬금 나에게 다가오는 일도 없습니다. 두려울 이유가 없습니다. 실제로 속담에서 솥뚜껑은 아무런 해악이 아닙니다. 그저 닮은 꼴일 뿐이죠.

솥뚜껑은 생각보다 뜻밖의 즐거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섣불리 괴로울 거라 단정 지을 필요도 없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솥뚜껑을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요? 밥을 지을 때 김이 피어오르는 모습이 생각날 수도 있겠네요. 요즘은 보기 어려운 모습이죠. 저는 솥뚜껑이라고 하면 ‘삼겹살’이 생각납니다. 저희집 아이들이 어릴 때 자주 갔습니다. 그 날은 모두 밥도 많이 먹고, 아이들도 신이 났습니다. 묵은지를 구워먹는 재미도 좋았습니다. 솥뚜껑은 행복의 상징이고, 추억의 기억입니다.

솥뚜껑만 생각하자는 것은 달리 말하면 좋은 기억을 떠올리자는 의미기도 합니다. 자라와 같은 불안, 초조, 우울, 고통, 공포 등을 생각하면 계속해서 그 속에 맴돌게 됩니다. 불안이 걱정을 낳고, 두려움이 고통을 낳습니다. 부정적 감정은 회오리바람처럼 내 주변을 감쌉니다. 답답한 일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솥뚜껑만 생각하면 세상은 달라질 겁니다. 행복, 사랑, 추억, 기쁨, 웃음 등이 꼬리를 물고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갑니다. 긍정이 깊어지면 부정이 줄어듭니다. 솥뚜껑만 생각하세요. 이왕이면 삼겹살이 지글거리며 구워지는 모습과 함께. 솥뚜껑만.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iiejhy@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