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밥 먹으며 노래하면 늙은 배우자를 만난다?”
태국 부모의 잔소리 속에 숨은 생활 미신, 한국과 닮고 또 다른 이야기
“무지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손가락이 오그라든다.”
“밥을 먹으며 노래하면 나이 많은 배우자를 만난다.”
태국 사람들과 오래 지내다 보면 이런 말을 한두 번은 듣게 된다. 처음에는 태국만의 별난 미신처럼 들리지만, 조금 더 듣다 보면 이상하리만큼 익숙하다. 밤에 빗자루질하면 복이 나가고, 밥그릇을 두드리면 팔자가 가난해진다는 한국의 옛 잔소리와 꼭 닮았다.
물론 미신은 과학이 아니다. 같은 태국 안에서도 지역과 집안, 세대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어제까지 “절대 하면 안 된다”던 일이 옆집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런 말이 흥미로운 까닭은, 사람들이 무엇을 두려워했고 아이들에게 어떤 행동을 가르치려 했는지가 그 안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무지개를 가리키면 정말 손가락이 잘릴까
태국의 대표적인 어린이 금기 가운데 하나가 “무지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지 말라”는 말이다. 태국어로는 흔히 ‘치 룽 래오 니우 꿋(ชี้รุ้งแล้วนิ้วกุด)’, 곧 무지개를 가리키면 손가락이 뭉툭해지거나 잘려 나간다는 식으로 전해진다. 지역과 집안마다 손가락이 썩는다거나 굽는다는 변형도 있다.
이것은 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여러 아시아 지역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무지개 금기’가 발견된다. 무지개를 하늘과 다른 세계를 잇는 신비한 존재로 보고, 검지로 가리키는 행동을 무례하거나 공격적인 몸짓으로 여긴 결과라는 해석이 있다. 그러니 이를 단순히 태국인의 자연 숭배 한 가지로 설명하는 것은 지나치다. 서로 멀리 떨어진 문화권에서도 닮은 금기가 생겨난, 꽤 보편적인 민속 현상에 가깝다.
밥을 먹으며 노래하면 ‘늙은 남편’을 만난다는 말도 표현을 조금 고칠 필요가 있다. 실제로는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고정된 속담이라기보다 ‘나이 많은 연인이나 배우자를 만난다’, 또는 ‘잔소리 많은 배우자를 얻는다’는 여러 버전으로 돌아다닌다. 핵심은 결혼 예언이라기보다 밥상에서 음식물을 흘리거나 식사 분위기를 어지럽히지 말라는 훈육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밥상머리에서 장난치지 말라”는 말과 결이 비슷하다.
밤에는 복도 귀신도 바쁘다
태국에서는 밤에 집을 쓸면 그날 들어온 재물과 행운까지 밖으로 쓸어낸다고 한다. 식사 도중 숟가락이나 포크로 접시와 그릇을 두드리면 떠도는 영혼을 불러 밥을 나눠 먹게 된다는 말도 있다. 한국에도 밤에 비질하면 복이 나가고, 밤에 휘파람을 불면 뱀이나 귀신이 나타나며, 밥그릇을 숟가락으로 두드리면 거지가 된다는 말이 있었다. 결과는 조금씩 달라도 금지하는 행동은 놀랄 만큼 닮았다.
여기에는 생활상의 이유를 짐작해 볼 여지가 있다. 전기가 없던 시절 밤에 비질을 하면 작은 물건이나 곡식까지 버릴 수 있었고, 그릇을 두드리거나 휘파람을 부는 행동은 식사 예절과 이웃의 잠을 해치기 쉬웠다. 다만 모든 미신을 ‘선조의 과학적인 지혜’로 포장할 필요는 없다. 이런 설명 가운데 상당수는 후대의 합리적인 해석일 뿐, 미신의 실제 기원을 증명하는 역사 자료는 드물다. 어떤 금기는 예절에서, 어떤 금기는 영혼관과 길흉 관념에서 생겼을 것이다.
수요일에 문 닫은 미용실의 사연
태국의 오래된 이발소 가운데 수요일에 쉬는 곳을 지금도 볼 수 있다. ‘수요일에는 머리를 자르지 않는다’는 금기 때문이다. 왜 하필 수요일인지를 두고는 설명이 여럿이다. 수요일을 성장과 번성의 날로 여겨 자르는 일을 피했다는 설이 있고, 옛 왕실과 고위층이 수요일에 머리를 손질해 이발사들이 궁으로 불려 갔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전한다.
어느 한쪽이 확정된 정설은 아니다. 현대식 헤어살롱 중에는 수요일에도 영업하는 곳이 많고, 전통 이발소도 모두 쉬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태국 미용실은 수요일에 문을 닫는다”고 단정하면 틀린 말이 된다. 오랜 금기의 흔적이 일부 업소의 휴무 관행으로 남아 있다고 보는 편이 맞다.
한국의 손톱 미신은 요일보다 밤에 집중돼 있다. 밤에 깎아 버린 손톱을 쥐가 먹으면 사람으로 둔갑한다는 옛이야기다. 어두운 곳에서 칼이나 가위로 손톱을 다듬다 다치는 일을 막으려 했다는 설명이 흔하지만, 손톱과 머리카락을 사람의 생명력이나 분신으로 보는 오래된 관념도 함께 살펴야 한다.
‘찡쪽’이 문 앞에서 여행을 붙잡을 때
외출하려는 순간 벽에 붙어 있던 작은 도마뱀이 “찍찍” 울면 태국인은 잠깐 멈칫한다. 집도마뱀 ‘찡쪽(จิ้งจก)’이 길을 나서지 말라고 경고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울음이 들린 방향과 횟수에 따라 길흉을 다르게 풀이하는 경우도 있어 무조건 흉조라고만 하기는 어렵지만, 출발 직전의 울음을 경고로 받아들이는 이야기는 태국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도마뱀 울음에 의미를 부여하는 문화는 주변 나라에서도 발견되지만 뜻은 같지 않다. 필리핀 일부 전승에서는 집도마뱀의 울음을 손님이나 소식이 올 징조로 해석한다. 그러므로 동남아 사람들이 도마뱀을 모두 ‘조상의 영혼’이나 ‘집의 수호신’으로 여긴다는 설명은 근거가 부족하다. 같은 동물을 보고도 한쪽은 여행을 미루고 다른 쪽은 손님을 기다린다는 차이가 오히려 민속의 재미다.
꿈속의 뱀은 분위기가 달라진다. 태국에서는 뱀이 몸을 감거나 휘감는 꿈을 꾸면 인연을 만날 징조라고 풀이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벌이 집에 들어와 둥지를 틀면 재물과 번영이 찾아온다는 믿음도 전한다. 다만 실제 벌집을 발견했다면 길흉보다 안전이 먼저다. 직접 건드리지 말고 전문가에게 확인을 맡겨야 한다.
비를 막는 레몬그라스, 새 차가 밟는 라임
야외 결혼식이나 사원 행사 날 먹구름이 몰려오면 태국에서 종종 등장하는 것이 레몬그라스다. ‘빡 따크라이 라이 폰(ปักตะไคร้ไล่ฝน)’, 레몬그라스를 거꾸로 땅에 꽂아 비가 다른 곳으로 가기를 비는 풍습이다.
흔히 순결한 미혼 여성이 꽂아야 효험이 있다고 알려졌지만 이것도 전국 공통의 단일 규칙은 아니다. 지역에 따라 집안의 막내딸, 아직 월경을 시작하지 않은 소녀, 오랫동안 남편 없이 지낸 여성 등이 등장한다. 풍습의 기원 역시 확실하지 않다. 농경사회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식물을 평소와 반대로 꽂아 자연의 흐름을 뒤집는 상징 행위였다는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무난하다. 오늘의 눈으로 보면 여성의 순결을 효험의 조건으로 삼았던 옛 성 관념도 함께 읽힌다.
미신은 믿음의 대상보다 문화의 자료다
미신을 놓고 참과 거짓만 따지면 답은 싱겁다. 무지개를 가리킨다고 손가락이 잘리지 않고, 노래하며 밥을 먹었다고 배우자의 나이가 정해지지 않는다. 찡쪽의 울음도 미래 예언이 아니라 동물의 의사소통이다.
그러나 그 말을 누가 누구에게, 어떤 순간에 했는지를 살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밤을 조심하라는 경고에는 어둠에 대한 두려움과 생활의 질서가 함께 있고, 밥상 금기에는 예절 교육이, 날을 골라 머리를 자르는 습관에는 태국인의 요일 관념이 남아 있다. 비를 멈추게 해 달라는 레몬그라스에는 날씨 앞에서 속수무책이던 농경사회의 간절함도 배어 있다.
한국의 할머니와 태국의 야이가 같은 부엌에 앉았다면 의외로 대화가 잘 통했을지도 모른다. “밤에 쓸지 마라”, “밥그릇 두드리지 마라”, “나갈 때 조심해라.” 귀신과 액운을 앞세웠지만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비슷했다. 조심하고, 예의를 지키고, 무사히 돌아오라는 것. 태국의 미신을 안다는 것은 운세를 믿는 일이 아니라, 태국인의 오래된 마음과 생활 언어를 알아듣는 일이다.
글 | 김종민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