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엇갈린 궤적, 맞닿은 인연 태국의 ‘최초’를 통해 본 한국의 근현대사
태국에 살다 보면 이 나라가 얼마나 일찍부터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고 근대화를 이룩했는지 새삼 놀라게 될 때가 있다. 최초의 공항, 최초의 은행, 최초의 TV 방송국 등 태국이 세워온 역사적 마일스톤들을 살펴보면, 비식민지 국가로서 외교적 균형을 유지하며 평화롭게 인프라를 구축해 나간 선진성이 돋보인다.
그렇다면 태국이 이러한 ‘최초’의 기록들을 써 내려가던 정확히 그 시점, 우리의 조국 한국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까? 두 나라의 엇갈린 근현대사 궤적을 나란히 비춰보는 것은, 이국땅에 사는 우리 교민들에게 우리가 걸어온 길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하는 흥미롭고 가슴 벅찬 작업이다.

1900년대 초, 평화로운 근대화와 국권 상실의 비극
1906년, 태국은 외국 자본에 휘둘리지 않고 순수 자국 자본으로 시암상업은행(SCB)을 설립하며 경제 근대화의 굳건한 기틀을 다졌다. 반면 같은 해 한국은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직후, 일제의 통감부가 설치되며 국가의 외교권과 주권을 서서히 빼앗기던 비극적인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이러한 극명한 대비는 1914년에도 이어진다. 태국은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연속 운영 공항 중 하나로 꼽히는 돈므앙 공항을 개항하며 일찌감치 글로벌 시대의 하늘길을 열었다. 반면 1914년의 한국은 무단통치가 극에 달했던 일제강점기였다. 대대적인 토지조사사업과 행정구역 통폐합이 폭력적으로 이루어지며 식민지 수탈 체제가 철저히 굳어지던 암흑기였다.

1950년대, F1 트랙의 왕자와 포연 속의 전우
가장 극적이면서도 숙연해지는 해는 바로 1950년이다. 이 해에 태국의 비라 왕자는 유럽 모터스포츠의 최고 무대인 포뮬러 원(F1)에 태국인 최초로 참가했다. 왕실 인사가 세계 최고급 스포츠 무대를 누비며 문화적 여유와 선진성을 보여주던 바로 그 평화로운 해, 한국에서는 민족 최대의 비극인 6.25 전쟁이 발발했다. 여기서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역사적 사실이 있다. 태국의 왕자가 F1 트랙을 달리던 그 시기에, 태국 정부는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한국에 지상군 파병을 결정했다. 육·해·공군을 모두 파병한 태국군, 이른바 ‘리틀 타이거(พยัคฆ์น้อย)’의 젊은 용사 6,326명은 이름조차 생소했던 나라 한국의 전장으로 달려와 피를 흘렸다. 양국의 공식 수교(1958년)가 맺어지기도 한참 전, 두 나라는 이미 피로 맺어진 혈맹이 된 것이다.
이후 1954년, 태국 영화 ‘산티-비나’가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수상하며 문화 예술의 꽃을 피울 때, 한국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온 국민이 생존을 향해 발버둥 치고 있었다. 이듬해인 1955년, 태국이 채널 4 방쿤프롬을 개국하며 대중 미디어의 화려한 막을 올렸을 때, 한국은 미군이 버린 드럼통을 펴서 최초의 국산 자동차인 ‘시발(始發) 자동차’를 만들어내며 한강의 기적을 향한 무거운 첫걸음을 떼고 있었다.

1960~70년대, 미스 유니버스와 눈물의 금메달
1960년대로 접어들며 두 나라는 각자의 방식으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다. 1965년, 아파사라 홍사쿨라가 태국인 최초로 미스 유니버스 왕관을 쓰며 국가적 자부심을 고취했다. 같은 해 한국은 경제 발전을 위한 종잣돈을 마련하고자 격렬한 반대 시위 속에서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했고, 국가의 명운을 걸고 베트남 전쟁 파병을 시작하는 험난한 결단을 내려야 했다.
시간이 흘러 1976년, 무척이나 흥미로운 평행 이론이 두 나라의 스포츠 역사에 새겨진다. 이 해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파야오 푼타랏이 복싱 동메달을 따내며 태국 역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조국에 안겼다. 그리고 바로 같은 대회에서, 한국의 양정모는 레슬링 종목에 출전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며 온 국민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완전히 다른 출발선과 시대적 배경을 가졌지만, 1976년 몬트리올에서 두 나라는 나란히 국민들에게 잊을 수 없는 감동과 희망을 선사하며 도약했다.
역사가 주는 묵직한 감동
우리가 발 딛고 사는 태국은 제국주의의 거센 파도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근대화의 이정표들을 세워왔다. 반면 한국은 식민 지배와 참혹한 전쟁이라는 벼랑 끝에서 피와 땀으로 압축 성장을 이뤄냈다.
출발점도, 지나온 풍경도 무척이나 달랐지만, 가장 어두웠던 시절 아무런 대가 없이 서로의 손을 잡아준 숭고한 인연이 있었기에 오늘날 태국과 한국은 훌륭한 동반자로 함께 성장할 수 있었다. 일상 속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태국의 낡은 건물이나 오랜 기록들을 마주할 때, 그 시간 속에 담긴 우리의 역사도 함께 겹쳐본다면 이곳에서의 삶이 한층 더 깊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글 : 김종민 편집국장